이 글은 석주 이상룡(1858~1932)의 망명 시를 대상으로, 아직 확인되지 않은 몇몇 지리를 고증한 것이다. 석주는 1911년 1월 경상북도 안동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고, 1932년 5월 12일 중국 길림성 舒蘭의 한 농촌에서 삶을 마쳤다. 이 기간 그는 조국의 독립과 이주 한인의 정착을 위해 노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漢詩文을 남겼다. 2장에서는 망명 시를 개관하였다. 편집 오류를 변정하여 망명 시를 222제 299수로 확정했다. 3~7장에서는 횡도천(橫道川), 영춘원(永春院), 휘파성(輝巴城), 밀십합(密什哈), 호란하(呼蘭河) 다섯 지명을 중심으로 그 일대의 지리와 위치를 고증하고, 아울러 시에 보이는 석주의 행적과 심경을 살펴보았다. 이 작업은 다음 몇 가지 차원에서 의의를 지닌다. 첫째, 한 역사 인물의 일생 일부를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재구하였다. 둘째, 1910년대에서 1930년대 초 사이 한국문학의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의 일부를 해명하여 문학사 서술의 시야를 확장했다. 셋째, 같은 시기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이면 일부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중국 동북 지역의 몇몇 지역을 한국문학의 장소이자 한국사의 현장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다. 석주는 20여 년 자주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기록에 남은 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글에서 다루지 못한 나머지는 후속 연구를 기약한다.
Lee et al. (Tue,)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