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토의 발견은 프랑스가 중국 및 마이센 자기에 필적하는 경질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프랑스 도자기 산업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는 과학자들의 분석과 행정적 노력, 그리고 우연한 계기가 결합한 결과였으며, 세브르 왕립 자기 제조소는 이를 활용해 기술적 개선과 생산 확대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 효과가 곧바로 지역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원료 산지였던 리모주 조세구는 세브르와 달리 당시 산업적 중심지로 성장하지 못했다. 고령토는 ‘하얀 금’으로 불렸지만, 그 가치는 국가 권력과 왕립 제조 체제 안에서 주로 실현되었고, 지역 차원의 자율적인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18세기 후반은 경질 자기 산업의 가능성이 제시되었으나 구조적 제약 속에서 충분히 확장되지 못한 과도기적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DaeBo Kim (Sat,)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