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앞서 할미산성 수혈주거지를 고찰한 연구의 연장선에서, 마북동 취락유적의 신라 수혈주거지를 비교‧검토함으로써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 초기 양상을 고찰하고자 하였다. 탄천을 중심으로 한 용인 지역은 신라 진출 이전까지 백제인의 정체성이 강하게 유지된 공간으로, 삼국이 각축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신라는 이 지역을 장악하고 산성‧취락‧고분을 조영함으로써 영역 지배를 확립하였으며, 단순한 군사 점령을 넘어 기존 백제계 주민의 정치적‧사회적 정체성을 해체하고 공동체를 재편함으로써 정치적 지배와 사회적 통합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마북동 취락유적의 수혈주거지 중복 양상은 정복민과 피정복민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단서이다. 신라 주거지는 대체로 기존 백제 주거지를 피해 조성되어 양 집단이 일정 기간 공존했음을 시사하며, 이는 점령 과정에서 피정복민의 생활 기반을 완전히 배제하기보다는 일정 부분 수용하는 전략을 보여준다. 또한 마북동에서는 신라 토기뿐 아니라 백제‧고구려 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삼국 간 문화 교류와 지역 적응의 양상을 드러낸다. 이러한 공반 양상은 신라가 기존 지역 사회와의 접촉과 융합을 통해 점령지를 안정적으로 편입시켜 나갔음을 보여준다. 한편 할미산성은 군사적‧행정적 중심지로 기능하며, 조세 수취와 역역 징발, 성 운영을 위한 물자 확보 등 신라 지방 지배 체계의 핵심 기반을 담당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마북동 취락유적은 산성 운영을 지원하는 배후 거점으로서 생활 및 생산 기반을 제공하고, 도로망을 통해 물자 공급과 행정적 연계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마북동 취락유적과 할미산성은 서로 독립된 유적이 아니라 상호 연계된 일체적 유적군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본 연구는 마북동 취락유적과 할미산성이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과 지방 지배 전략 속에서 상호 보완적 역할을 수행한 복합 유적군임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군사 점령에서 나아가 피정복민의 생활과 문화를 수용‧재편하며 지역 사회를 통합해 나간 신라의 지방 지배 정착 과정을 이해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Jin-joo Kang (Sun,)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