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일민스키 체계의 형성과 제도화 과정을 언어 이데올로기와 문화정치학의 관점에서 검토함으로써, 이 체계가 제국의 언어 권력, 정교회의 선교 담론, 그리고 근대 민족주의의 형성이 교차하는 역사적 장이었음을 논증하였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은 볼가-우랄 지역에서 크랴셴 타타르인의 대규모 이슬람 ‘이탈’ 사태에 직면하였고, 이 위기 속에서 일민스키(Н. И. Ильминский, 1822-1891)의 교육 체계가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일민스키는 이민족의 진정한 기독교화가 러시아어 강제가 아닌 모국어를 통한 교육과 선교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키릴문자 기반의 이민족어 표기 체계를 창안하였다. 이 체계는 1863년 카잔 중앙 크랴셴 타타르학교, 1867년 성 구리이 형제단, 1870년 이민족 교육 규칙, 1872년 카잔이민족 교원신학교, 1876년 번역위원회의 설립을 통해 점진적으로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제국 통합을 위해 설계된 이 체계는 역설적으로 이민족 문자의 창제와 표준화, 이민족어 출판의 활성화, 이민족 지식인 계층의 형성을 촉발하였다. 러시아어와 정교회를 중심으로 한, 단일한 제국적 통합의 지향이 오히려 복수의 이민족어가 문자화되고 독자적 문어 전통을 형성해 가는 귀결을 낳은 것이다. 20세기 초 이 체계의 적용이 제한되고 1913년 공식적으로 금지되었다는 사실은, 제국의 언어정책이 내포한 근본적 긴장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Ji Hyoung Han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