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흥왕이 月城 동쪽에 紫宮을 지으려다가 계획을 바꾸어 황룡사를 지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진흥왕이 紫宮의 조영 계획을 바꾸어 절을 짓게 된 배경이나 계획을 변경한 시점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紫宮에서 황룡사로 조영 계획을 바꾸게 된 배경과 시점을 검토하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황룡사와 그 주변 지역은 발굴조사로 드러났듯이 6세기 중반까지 습지였거나 논으로 이용되었다. 그래서 여기에 紫宮을 지으려면 대지 조성 작업이 필수였다. 최근 황룡사 부지의 대지 조성 기간을 최대 110일로 추정하고 553년에 대지 조성을 완료했으리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저습지였던 월지 일대의 개발 과정과 비교하면 그렇게 단기간에 대지 조성을 마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대지 조성층에서 6세기 중후반을 상한으로 하는 기와가 출토된 사실과 함께 탑・금당・강당 등이 건립되지 않았음에도 566년 또는 569년에 황룡사의 창건과 관련해 어떤 일을 마쳤다는 기사가 전하는 점에 착안해 566년 내지 569년에 대지 조성을 완료한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신라는 6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황룡사와 그 주변 지역처럼 넓은 공간을 대지 조성해 본 경험이 없었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당연했고,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 대지 조성에 더 많은 기간과 노동력의 소요가 불가피했다. 공교롭게도 이 무렵 신라는 고구려・백제와의 전투가 잦았고, 대가야와 아라가야의 복속 문제도 대규모의 노동력을 장기간 징발하기 힘들게 했다. 이에 진흥왕은 대규모 노동력의 동원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 대지 조성이 본격화된 553년에서 멀지 않은 시점에 대지 조성의 범위를 줄이고, 紫宮 대신 황룡사를 짓는 방향으로 계획을 바꾼 것으로 이해하였다. 최근 황룡사의 창건가람 추정안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견해가 적지 않은데, 566년 또는 569년 대지 조성을 완료했으리라는 추정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향후의 연구 결과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Hyun-tae Lee (Thu,)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