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함안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가야5598 문서목간을 재검토하여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목간 1・2면에는 수발 관계가 쓰여 있고 1면의 ‘眞乃滅村主’가 목간의 발신자, 2면의 ‘□城在 弥即尓智 大舍’가 수신자이다. ‘□城’은 ‘大城’일 가능성이 크고 2025년에 새로 보고된 문서목간에도 ‘大城’이 나오기 때문에 이 ‘大城’이 성산산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3・4면이 문서 내용이다. 종래 ‘稚然’으로 판독되었던 3면 마지막 부분을 새로 ‘雖然’으로 판독하여 ‘비록 그러하나’라는 역접의 뜻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3면의 ‘先節’과 4면의 ‘今’이라는 과거와 현재를 구분하는 내용과도 잘 부합한다. 4면에서는 종래 ‘寀’나 ‘宷’로 판독된 제7자를 ‘來’로 보고, ‘廻’나 ‘回’ 등으로 판독된 제9자를 ‘國’으로 새로 판독하여 ‘國法’이라는 단어로 이해하였다. 문서 내용은 역역 동원 기간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3면은 진내멸촌주가 동원 기간이 60일간이라고 인식하였다는 것, 4면은 이모라 급벌척이 동원 기간이 국법으로 30일간으로 정해져 있다고 주장하여 실제로 30일간만 일하고 식량을 먹고 가 버렸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문서목간은 역역 동원 기간이 60일인지 30일인지를 문의하기 위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간을 통해 촌주가 역역 동원에서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 다른 지역의 지방관과 문서목간을 주고받는 등 광범위한 행정에서 활약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방민이 국법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는 것을 통해서 6세기 후반에 이미 법을 통한 지배라는 관념이 지방에까지 널리 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법 자체를 실제로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고 추측된다. 역역 동원기간이 60일간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은 가야2654에도 보이고, 또 영천 청제비 정원명에 보이는 동원 기간도 60일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통일 이후에도 계승되었다고 생각된다.
Shigeru Hashmoto (Thu,)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