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 후기 제주 지역에서 ‘충(忠)’ 담론이 지역 사회와 특정 가문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되고 활용되었는지를 검토하였다. 이를 위해 이인좌의 난과 홍경래의 난을 전후해 의병 봉기를 시도한 정의현 유생 오흥태와 대정현 충익위 구제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충 담론이 제주 사회에서 의미화되고 실천되는 양상을 검토하였다. 특히 능성 구씨 구제국 후손가에 전승된 호구단자, 완문, 교지, 상소, 창의격문 등 고문서를 분석하여, 중앙의 충신 현창 정책과 의리 담론이 지역의 사회적 조건과 가문 내부의 대응 논리 속에서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그 결과 오흥태와 구제국의 기병은 단순한 도덕적 표방에 머문 것이 아니라, 정려와 복호, 천역 면제와 같은 제도적 조치와 연동되며 가문의 사회적 위상 변화와 밀접하게 맞물려 전개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요컨대 이 연구는 조선 후기 제주 사회에서 충 담론이 중앙 정책의 반영이라는 차원을 넘어, 지역 유생과 가문에 의해 구체적인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계승되었음을 사례를 통해 밝히고, 제주 지역에서의 충 담론 수용과 활용의 일단을 실증적으로 제시하고자 하였다.
Ok-Boo Lee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