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한국전쟁의 급변하는 전황에 따른 선전 노선의 변화 그리고 정전 협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 대한 임화의 문학적 대응과 거기에 투영된 정치적 생존 전략을 조명한다. 1949년 6월 조선로동당의 창건과 전쟁 준비 과정에서 당내 모든 파벌은 김일성을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추대하는 애국주의 선전 노선에 합의하였다. 이에 발맞추어 임화는 남한 지역에서의 인민유격대의 투쟁을 선전하는 한편, ‘김일성 장군’에 대한 충성을 표현하는 시(「노력하자 투쟁하자 5.1절이다」)를 발표하였다. 전쟁 초기 그의 시는 인민유격대와 인민의용군이 모두 최고사령관 김일성의 명령에 충실한 공화국 정규군임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경향은 1950년 12월 피난지 강계에서 창작된 「너 어느 곳에 있느냐」에서도 지속되었다. 그러나 1951년 1월, 새로운 소련 고문 라주바예프가 문화선전 분야를 재편하면서 ‘애국주의’ 선전 노선에 변화가 일어났다. 애국심의 원천은 김일성 개인보다 당과 인민민주주의 체제에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임화의 시에서 애국심과 영웅성의 원천은 ‘어머니’(「바람이여 전하라」), 전투명령, 고향에 대한 사랑, 계급의식 등으로 다층화되었으며, 수령에 대한 충성은 하나의 ‘정치적 의례’(「흰 눈을 붉게 물들인 나의 피 위에」)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임화의 예민한 정치적 감각은 남한지역이 해방되지 않을 때 닥칠 미래―숙청―를 예견하며 전사들에게 더욱더 영웅적인 투쟁을 할 것을 독려하기(「평양」)도 하였다. 1951년 6월 3일, 김일성이 정전을 결심하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정전 협상이 시작되자, 임화는 해방 후 남조선로동당의 투쟁이 조선 혁명사의 한 부분이며 인민유격대가 공화국의 정당한 군대임을 강조하는 시(「기지로 돌아가거든」)를 발표하였다. 나아가 1952년 초 정전에 적극적인 김일성과 전쟁을 지속하기를 원하는 스탈린 사이에서 임화는 스탈린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는 시 「40년」을 통해 ‘남한 해방’의 완수를 전제로 김일성에게 영원히 충성할 것을 맹세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선로동당 창립부터 숙청될 때까지 임화는 급변하는 전선 상황과 소련-중국-북한의 최고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이 정치적으로 문화 전선에 미치는 영향 밑에서 ‘남한해방’이라고 하는 남로당의 정치적 이해, 그리고 고향(서울) 회복이라는 자신의 실존적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Gaehwa Bae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