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기정진(奇正鎭) 사후에 노사학파(蘆沙學派)의 적전(嫡傳)으로 평가받은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의 교유 관계와 이에 기반한 학문 활동을 검토한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호남의 대표적인 문인 집단이었던 노사학파는 기정진 사후에 여러 문인을 중심으로 기정진의 학문, 즉 노사학(蘆沙學)에 대한 뚜렷한 계승 의식과 함께 이에 기반한 폭넓은 학문 활동을 통해 학파의 외연 확대와 지속을 이루며 학파적 면모를 20세기 중후반까지 유지하였다. 유학의 영향력이 급격히 약화되는 가운데에서도 노사학파가 근 1백 년 간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정진의 손자이자 문인인 기우만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기정진 생전에 이미 학파 내부에서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그는 기정진 사후에 노사학의 체계화를 주도하며 문인들의 강학 활동의 기반을 조성하였고, 자신도 강학 활동을 본격화하여 가장 많은 문인을 배출하였다. 이뿐 아니라 그는 호남 최초로 창의하는 등 의리 실천을 상징하는 학자로 활동하였다. 이 논문에서는 선행 연구에 유의하면서 기우만이 조성한 교유 관계의 기초가 되는 선대(先代), 즉 기정진의 교유 관계를 정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우만이 기정진 생전과 사후에 조성한 교유 관계를 그의 학문 활동과 연계하여 확인하였다. 그리고 교유 관계를 기반으로 구체화한 기우만의 학문 활동에서 드러나는 특징적 면모를 확인하고, 이를 통해 기우만의 학자적 위상을 가늠하고자 하였다.
Hak-Rae Park (Sat,)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