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초기 교단 관련 외부 인사에 관한 검토는 비단 교단 내부뿐만 아니라 국가 · 사회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연구에서 교단 내외로 노출된 외부 인사 가운데 교단 내 · 외적으로 교차검증이 가능한 인사 50여 명을 유의 표본 추출하여 그들의 교단에 대한 태도를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연구회 시기 관련 대외 인사는 불교계 승려, 재가불자, 경찰, 판 · 검사, 언론인, 의사, 학계 등 직업군에서 다양했다. 국적별로는 일본인, 조선인, 미국 순으로 점유율이 높았다. 그리고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에 선 인사들은 의사였다. 이들의 긍정적인 반응의 배경에는 소태산 대종사와 정산종사 그리고 교단의 교리 및 제도 등을 평가한 결과지만 부정적인 반응의 배경은 일제의 법령, 정책에 의한 결과로 보인다. 둘째, 관련 자료에 근거하여 교차검증 결과 잠정적으로나마 안창호의 총부 방문은 1936년 2월경, 총부 주재소 설치는 1937년경으로 본다. 그리고 김태흡 스님의 총부 방문 시기(1942.9.2.-9.9)도 확인되었고, 우에노슌에이(上野舜潁) 스님의 총부 방문 역시 1938년, 1943년 두 차례로 보인다. 셋째, 황도 불교화와 관련해서 일본군 병사부 사령관은 마키지로(牧次郞) 소장은 1944년에, 호선군은 160사단, 464연대는 무장 군으로 이리에 주둔 기간(1945.5.28.-8.15.)인 1945년 7월 25일에 각각 황도 불교로 전환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교롭게도 정산 종사는 1945년 6월경 지방 순회에 있어 위기를 모면했다. 끝으로 향후 교단에서 이들 외부 인사와 관련하여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무엇보다도 일제 잔재의 청산을 비롯하여 이들 교단 관련 외부 인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교단과 국가사회의 그것 간의 차이에 대한 이해, 향후 이들에 대한 기록의 교차 검증을 통한 정확한 기록의 확보와 관리 등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초기 교단의 사회적 역할과 교사 정립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길 기대한다.
GuiSung Kim (Wed,) studied this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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