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조선 성리학 수양론에서 정좌(靜坐)가 어떠한 이론적 조건 아래에서 유가적 공부로 이해되고 승인되었는지를 사상사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송대 성리학에서 정이천과 주희가 정좌를 경(敬) 공부의 한 공정으로 제한하며 좌선(坐禪)과의 혼효(混淆) 가능성을 문제화한 논의를 출발점으로 삼고, 이러한 문제들이 조선에 이르러 국왕·경연 담론이라는 공적 차원과 퇴계 이황 및 그 학맥의 이론 속에서 어떻게 계승·정교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아울러 퇴계학파 외부 유학자들의 비판을 통해, 정좌가 수행의 실제 국면에서 좌선과 체험적으로 근접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지점을 함께 고찰한다. 이를 통해 정좌는 자족적 수행이 아니라, 경의 주재, 동정의 통관, 일용 속 윤리적 실천을 전제로 할 때에만 성리학적 수양으로 성립할 수 있었음을 밝힌다.
Seo et al. (2026)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