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930년대 초 프랑스 비순응주의를 독일을 향한 초국가적 지향과 그로 인해 촉발된 내부 갈등의 관점에서 재검토한다. 특히 1933년 11월 공개된 「히틀러에게 보내는 서한」을 중심으로 독일에 대한 인식이 비순응주의의 개념적 틀뿐 아니라 내부 관계를 어떻게 재편했는지를 분석한다. 신질서파는 보수혁명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히틀러를 “총체적 혁명”의 잠재적 실행자이자 ‘교정 가능한’ 혁명가로 전제하며, 서한을 혁명적 동지에게 보내는 정치적 권고로 구성했다. 반면 엠마누엘 무니에의 “에스프리(Esprit)”는 히틀러가 집권과 통치 과정에서 이미 기존 질서와의 비가역적 타협을 감행했다고 보았고, 그 결과 히틀러는 더 이상 ‘진정한 혁명’의 담지자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신질서파의 전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 논쟁은 이전의 협력 관계를 단절시키고 “우파도 좌파도 아닌 것(ni droite ni gauche)”이라는 공동의 자기규정을 무력화했다. 따라서 비순응주의의 해체는 기존의 연구사에서 주목되었던 것과는 달리 1934년 2월 위기만으로 설명되기보다, 히틀러와 독일에 대한 상이한 해석이 누적되어 촉발된 분열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시각을 통해 초국가적인 지적 교류가 어떻게 비순응주의의 발전과 해체에 영향을 주었는지에 주목한다.
TaeSoo Kim (2026)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