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1783년 연행록인 『입심기』의 형성 배경과 그 속에 반영된 청나라 문인의 이미지 및 필담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1783년 청나라 건륭황제가 조상의 무덤에 참배하기 위해 심양에 행차하자 조선은 황제의 생일을 축하하고 문안하는 사절을 파견하게 되었다. 이때 자제군관으로 참여한 이만수와 이전수는 사행에 참여한 후 사행록을 남겼던 가문의 전통을 이어 자신들의 견문도 빠짐없이 기록한 결과, 『입심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심양에서 만난 문인의 이미지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누어졌다. 청나라 한족 관리인 선총과 효자사에서 만난 한족의 선비들은 ‘문자옥(文字獄)’을 염두에 두고 시고(詩稿)를 보여주지 않거나 교류를 회피했다. 그러나, 문학적 소양을 갖추었지만 생계를 위해 ‘문’을 버리고 상인이 된 장유곤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조선인과 필담을 나누는 교류 상대가 되었다. 필담의 내용은 만연한 문자옥의 공포와 유교ㆍ불교ㆍ도교가 융합된 관제(關帝) 신앙의 성행 등 청나라 사회 현실의 충실한 반영, 삼학사의 결말에 대한 정보의 축적과 조선 국호에 대한 왜곡된 정보의 변정(辨正), 잦은 만남으로 다져진 우정과 이별에 대한 아쉬움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이처럼 『입심기』는 필담을 통한 양국의 교류가 북경의 관료나 선비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관행과 달리, 필담의 공간과 주체가 ‘심양’이라는 특정 지역과 ‘상인’이라는 특정 계층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Chae et al. (Sat,)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