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현도군 설치 이전부터 존재한 고구려와 위만조선 이전의 고조선이 정치사 측면에서 유관하였을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문헌 자료를 통해 고구려의 성립 시기와 성립 이후의 정치적 위상을 검토하였다. 문헌상 고구려의 존재는 서기전 107년경에 확인되는데, ‘고구려’라는 명칭은 ‘구려’의 존재를 전제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명칭이었다. 이러한 명칭 변화와 관련된 정치적 배경으로는 위만조선의 성립을 들 수 있다. 위만조선은 주변 세력을 복속시키며 통제력을 강화하였고, 이 과정에서 고구려와는 긴장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위만조선에 일방적으로 종속되지 않았으며, 동이 지역을 대표하는 독자적 세력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위상은 왕의 존재로 상징되는데, 고구려에서 고구려왕은 ‘皆次’ 라 불렸다. ‘皆次’는 신라 ∙ 백제의 왕호와 유사하여 그 기원이 고조선에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러한 고조선의 왕호로는 ‘箕子’가 있었다. 고조선의 왕호 ‘箕子’가 단절되고 ‘皆次’가 등장한 점은 위만조선의 성립이 고구려의 성립과 왕호 사용의 계기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위만조선 붕괴 이후 고구려의 고조선 계승 또는 부흥 문제는 위만조선과 그 이전 고조선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또한 주몽의 등장으로 왕실이 교체된 이후에도 국호 ‘고구려’가 유지된 점은 선행한 고구려의 계승 문제가 존재하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의는 향후 보다 정밀한 연구가 요구된다.
Sung-hyun Kim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