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삼국사기』 문무왕 14년조에 보이는 영묘사 앞길에서의 군사 사열 기록을 단서로 삼아, 문무왕대 영묘사의 성격과 정치적 의미를 검토하였다. 검토 결과 문무왕대 영묘사는 화재 이후 단순한 복구를 넘어 구조와 기능이 재편되는 중 창적 성격을 지닌 재건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이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이해했다. 문무왕대는 통일을 마무리하고 대당 전쟁이 전개되던 시기로, 신라 왕실은 새로운 국가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정당화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불교는 국가 질서를 설명하는 핵심적 상징 자원으로 활용되었으며, 황룡사 구층탑과 낭산・사천왕사로 이어지는 공간 구성은 신라 중심의 세계 질서를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하였다. 특히 이러한 불교적 상징 체계들은 모두 선덕왕과 연계되어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문무왕대 영묘사가 선덕왕의 기억을 매개로 국가 질서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공간으로 재편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다. 영묘사 앞길에서 이루어진 군사 사열은 단순한 군사적 행위를 넘어, 불교적 세계 질서와 왕권의 정당성을 결합하여 표출하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하였다. 따라서 문무왕대에 선덕왕이 중요한 상징 자원으로 주목되고 활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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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oo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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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joo Kim (Thu,) studied this question.
synapsesocial.com/papers/6a0565f4a550a87e60a1e098 — DOI: https://doi.org/10.65509/jshs.2026.4.66.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