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신라인 숙위자의 기능과 그 성격 변화에 대하여 살핀 것이다. 숙위는 궁중에서 護衛하는 행동 그 자체를 의미하는 용어였을 뿐만 아니라 궁중 수비군을 가리키는 칭호이기도 하였다. 신라는 648년부터 870년까지 왕족 혹은 귀족을 숙위자로 당에 파견하였다. 특히 고위층 신라인이 당 조정에서 숙위하였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前漢代부터 나타난 숙위제도는 중국 주변 국가 및 부족에서 중국에 왕족이나 고위 관리의 자제를 숙위로 보내는 것으로, 인질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났다. 唐代에는 당 조정에서 숙위자들에게 官銜을 수여하거나, 숙위자들이 당황제에게 狀을 올리기도 하는 등 숙위의 성격에서 점차 인질의 의미가 약해지고 외교관으로서의 면모가 더 부각되기에 이른다. 신라는 羅唐同盟의 공고화 및 화친을 위해 당에 처음 숙위자를 파견하였다. 이후 7세기 羅唐戰爭期에 당은 숙위자를 신라를 견제하는 데에 적극 활용하였는데, 당시 숙위자는 인질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8세기 전반에 聖德王은 親唐政策을 강력하게 추진하였고, 발해의 登州 공격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가 나당전쟁 이전 수준으로 개선되자, 외교관으로서의 숙위자의 역할이 강조되는 특징을 보였다. 숙위자들은 당 사신단의 일원으로 신라에 파견되어 당의 請兵 요구를 전달하거나 또는 신라 조정의 의견을 당 황제에게 피력하는 등의 외교적인 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당시 숙위자들은 교대로 장기간 당에 체류하였고, 귀국할 때는 당의 副使로 임명되었다. 한편 신라인 숙위자와 사신들은 성덕왕대 이전에 무관직의 관함을 주로 수여받다가 그 이후에는 문관직을 수여받았는데, 무관직을 계속 받은 발해에 비해 신라가 우대를 받았음을 시사한다. 이는 당에서 신라를 관계가 매우 돈독한 盟邦으로서 인식하였을 뿐만 아니라, 733년 이후 양국 간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군사적 긴장관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된다.
Hasol Shin (Thu,)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