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960~70년대 서울 지하철 1호선의 도입을 둘러싸고 펼쳐진 다양한 주체들, 서울시·도시계획위원회·관료집단·한국 정부·일본 정부 및 기업이 지하철 건설을 어떻게 인식하고 참여했는가를 분석했다. 서울의 지하철 1호선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국가 개발정책·도시계획·국제협력이 교차한 복합적 근대화 사업이었다. 1950년대 전쟁 이후 서울은 인구 급증과 교통 혼잡에 직면했다. 서울시는 1962년 『도시계획백서』에서 노면전차 철거와 “고속전차(지하철)” 도입을 제시하며 교통체계 전환을 모색했다. 1964년 김대만 부시장, 이상연 도시계획국장, 한정섭 과장 등 관료들은 일본의 도쿄·오사카 지하철을 시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역–청량리 구간(8.5km)을 1호선으로 하는 「서울특별시 고속전차 건설계획」(1965)을 수립하였다. 서울시는 지하철을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도심 재편과 부도심 개발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했다. 반면 중앙정부는 재정 부담과 외자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소극적이었으며, 건설부·교통부 등은 차관 확보를 우선시했다. 이러한 시각 차이 속에서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도심–부도심을 잇는 입체적 교통망 구축이 도시 성장의 방향이라 판단하고 고속전차 건설계획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국내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 사업은 정체되었다. 1970년 이후 정부는 수도권 교통난을 국가 과제로 인식하며 사업을 재개했다. 제4차 한일 각료회의에서 일본이 수도권 교통조사단을 파견하고, 1971년 제5차 회의에서 8천만 달러의 차관 및 기술 지원을 약속하면서 한일 협력이 본격화되었다. 일본은 이를 경제협력과 기술수출의 기회로 인식했고, 미쓰비시 상사를 중심으로 ‘일본 상사연합’을 구성해 설계·장비·감리를 담당하였다. 반면 한국 정부는 외자 유치를 통한 도시 근대화와 도시 인프라 제고를 목표로 삼았다. 결국 지하철 1호선의 건설은 서울시의 공간계획, 중앙정부의 성장전략,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이 결합된 결과였다. 1974년 개통된 1호선은 도심과 부도심을 연결하며 도시의 공간구조를 재편했고, 서울을 현대적인 대도시로 전환시키는 상징적 사업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급격한 도시 팽창기에 등장한 교통 인프라이자, 도시계획의 실험이었지만, 동시에 외자 의존형 도시개발 체제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Kyeongsang Kwak (Sun,)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