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충무공을 모신 영당(影堂)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화제(畫題)가 적혀있는 이순신 영정이 최근 공개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이 화제를 중심으로 이 그림이 언제 어떤 경위로 제작되었는지, 그리고 영정에 표현된 갑옷과 투구 그리고 화살과 도검 및 신발 등의 양식에 대해서 조선시대의 문헌과 유물 자료들과 비교 검증 하였다. 그 결과 통영 충무공 영당은 현재 착량묘에 해당하며, 이항복(1556~1618)의 기록에 의하면 노량해전 직후에 진린(陳璘)의 제안에 의해 충무공 영정을 그리게 되었고, 이시언(李時言, ?~1624)에 의해 영당을 지어 영정을 봉안하고 제향을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충무공의 갑옷과 투구 및 무기들은 조선시대의 『세종실록오례』(世宗實錄五禮)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등의 기록과 일치함을 확인할 수 있었고, 조선중기의 유물과 임진왜란의 전투 장면을 그린 전쟁도를 통해 이 영정에 표현된 무구(武具)들이 상상에 의해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당시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갑주를 차려입은 이 영정은 이순신 장군의 순국 직후에 부하들에 의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복식과 무기도 충무공이 직접 사용하던 것일 뿐 아니라, 얼굴도 가장 원형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조선시대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시대에 그려진 유일한 갑주본 영정으로서, 앞으로 여러 방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 이순신의 영정이나 동상 제작 등에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술사 · 역사 · 군사학 등의 여러방면에서 이 영정에 표현된 조선중기 무장의 갑주와 무구에 대해 연구할 가치가 있다.
Soojin Kang (Sun,)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