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주의식의 행적과 시조 작품을 정리하고, 주의식 시조의 지향을 세 가지로 분석하였다. 기존 연구에서 주의식은 무과에 급제하였어도 종6품 지방관인 현감직에 머물렀기에 여항인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체감하였다고 추정하였다. 그렇지만 주의식(朱義植, 1625~?)은 도화서(圖畫署) 화원(畫院) 출신의 기술직 중인으로, 조총 감조(監造)의 공로를 인정받아 1673년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특별 승격되었고, 1677년 숙종에게 칠원현감을 임명받았다. 이로 인해 일부 자료에서는 주의식을 무과 출신의 인물이라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주의식이 작가로 기명된 시조는 『청구영언』 진본, 『해동가요』 계열 가집, 『병와가곡집』, 『동국명현가사집록』, 『악부』 고대본 등에 실려 있다. 이 중 『청진』, 『해동가요』계열 가집에 수록된 시조가 주의식의 작으로 판명된다. 김천택은 주의식의 시조를 보고 몸가짐은 공검(恭儉)하고 마음 둠은 평온하니 군자의 풍모가 있다고 평가하였다. 주의식의 시조에서는 『시경』, 『대학』 등의 경전을 인용하고 우주의 원리를 제시하면서 군자의 태도를 구현하였다. 그리고 백이 숙제, 비간, 항우 등의 고사 인물을 활용하여 도의적인 인물상을 형상화하였다. 한편으로 가창을 통한 흥취를 고양하기도 하였다. 주의식은 여항 가객 중에서도 초기에 활동한 인물이며, 그의 시조에 나타난 지향들은 이후 여항 가객들에게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이 점에서 주의식은 조선 후기 여항가객들이 주로 신분적 한계나 현실 비판의식을 드러냈다는 기존의 통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In-han Bae (Thu,) studied this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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