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조선시대 외교문서 職事 범주의 변화를 중심으로 승문원 사자관 설치가 가능하였던 배경을 살펴보았다. 외교문서 직사는 태종대에 설정되었다. 이 직사 범주에 吏文 寫字업무가 포함되었다. 태종은 이 업무를 포함하여 외교문서 직사를 모두 文臣에게 맡겼으나, 문신들은 이를 雜學에 가깝다고 여겨 꺼렸다. 이러한 인식에 대응하여 세종대부터 직사 전체를 아우르는 직능 평가를 시행하고 그 성적을 근거로 직사를 장려하였다. 이로써 외교문서 직사 범주를 재설정할 수 있었으나, 직능 평가에서 사자 업무와 다른 업무의 차이가 발생하였다. 이 차이로 사자 업무 수행을 장려하기가 어려워지면서 세조대에 사자 업무는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다른 사자 업무와 구별되었던 외교문서 사자 업무의 특징은 사라졌다. 결국 중종대에 이르러 중인 사자관이 외교문서 사자 업무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구로 사자관 설치 과정이 외교문서 직사 변화와 연관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사자관은 사자 업무를 비롯한 외교문서 직사 전체를 오직 문신에게 맡기려는 시도와 그 직사 전체 혹은 일부를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 문신들 사이를 거듭 조정한 끝에 나온 관직이었다. 이 조정 과정은 승문원의 특수한 인사 규정으로 정리되었다. 이러한 조정뒤에 직사 수요 증가나 중인 신분 성장 등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사자관이 활용될 수 있었다. 사자관 설치에 따라 외교문서 직사를 오직 문신에게 맡긴다는 방침은 유지되지 못하였지만, 제술 업무를 중심으로 하는 외교문서 직사는 문신의 일로 정착하였다.
Jihun Lee (Wed,)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