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하남 선동 출토 명문 기와(이하 선리 명문와)를 토대로 신라 통일기 船家의 운영 양상과 기능을 고찰하였다. 선리 명문와는 漢州 내 각 군현에서 할당받아 제작한 것이며, 이를 蟹口에 있던 船家에 납품한 것으로 확인된다. 기와의 제작 시기는 9세기 무렵으로 파악된다. 蟹口는 고덕천이 한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을 가리키며, 지리적으로 포구가 위치하기에 유리한 곳이다. 한편, 漢州의 州治로 비정되는 하남 지역 일대에서 선리 명문와와 유사한 기와가 발견되고 있다. 이 기와는 船家의 기능이나 운영 범위가 蟹口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國(營) 蟹口 船家’는 신라 통일기 한주 지역 일대의 수취와 관련된 기능이 집적된 공간으로 파악된다. 船家의 위치가 육상 및 수상 교통의 교차점이라는 데서 알 수 있듯, 船家는 한강 일대의 조운을 관할하던 기구로 추정된다. 또한, 현재까지 船家는 한주 권역 내에서만 나타나는 기구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船家는 외부에서 주치 인근으로 들어오는 물자를 관장하는 관문적 성격을 띤다. 결과적으로 船家는 신라 통일기 한주 지역에서 물류 기능을 수행하는 행정 공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Chae-Rim Min (Tue,) studied this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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