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불법연구회 당시 신문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불법연구회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것의 역사적 함의는 무엇인지를 정리해 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불법연구회’라는 핵심어로 국내의 다양한 신문 저장소(아카이브)를 검색해 본 결과 총 52건을 확인했다. 그 반응의 내용은 정치(임정 지지), 불법연구회 소개 및 교단 명칭 선포, 삼남 지방 수해 의연 활동, 야학 운동, 전재 동포 구호사업, 국방헌금 등이었다. 이들을 다시 유목화하여 양적인 분석(시대, 매체, 주제어 등)과 아울러 주요 보도내용을 분석했다.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법연구회 창립총회(1924년)로 부터 원불교 교단명 선포(1948년)에 이르기까지 당시 불법연구회에 대한 당시 신문의 반응은 총 52건이 확인되었으며, 이는 기존에 소개된 『불법연구회 요람』 일본어판(1943)이나 선행연구의 그것에 비해 많았다. 둘째, 불법연구회에 대한 반응을 보인 언론사로는 《조선일보》(14회), 《동아일보》(13회), 《매일신보》(13회), 《자유신문》(2회), 기타 《중앙신문》, 《시대일보》, 《중앙일보》, 《조선신문》, 《불교시보》, 《신조선보》, 《경성일보》, 《대판조일》, 《조선경찰신문》 등(각 1회) 14개 신문으로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가 상대적으로 많은 보도 횟수를 기록했다. 신문의 반응을 연도별로 분류해 보면, 1924~1929년(4건), 1932~1940년(29건), 1941~1948년(19건) 순으로 나타났고, 1930년 이후가 총 48건으로 전제의 92%를 차지하였다. 셋째. 불법연구회에 대한 당시의 신문 보도내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으로는 불교 내지는 종교혁신의 노력, 시대와 사회적 공유지대 확보의 노력, 일제청산의 과제 등을 들 수 있다.
GuiSung Kim (Tue,) studied this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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