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고려혁명군의 해산 과정에서 그간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던 모스크바로 유학 간 고려혁명군 일부를 다루었다. 1922년 고려혁명군 출신 공산대학 입학생에 주목하여, 이르쿠츠크파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들을 선발하여 추천을 진행했는지 살폈다. 이를 위해 한인개인문서군(РГАСПИ Ф. 495. Оп.228)과 자료집의 공산대학문서군(РГАСПИ Ф. 532), 그리고 시중에 출간된 러시아문서 번역집을 주로 활용했다. 분석 결과, 1922년 공산대학 입학생 20명 중 12명이 고려혁명군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고려혁명군의 간부진이나 공산당원, 혹은 비교적 학력 수준이 높은 사회주의자들이었다. 이르쿠츠크파는 고려혁명군 출신들이 장차 정치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 성장하길 바라며 공산대학으로 유학보냈다. 일차적으로 공산대학 입학예정자를 선발한 것은 대원들의 학습 능력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고려혁명군의 정치부였다고 보인다. 이르쿠츠크파는 파견 대행 기관으로 코민테른집행위원회 동방부를 선택했는데, 이는 자파에 우호적인 러시아 관료들의 협조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방부와 교섭하면서 이르쿠츠크파는 고려공산당 연합중앙위원회의 위상을 이용했다. 당시 코민테른은 특정 분파를 한인 대표로 승인하지 않고 있었기에 유학 추진 과정에서 연합중앙위원회의 명의가 필요했다. 고려혁명군의 해산은 러시아 내전이 마무리되는 국면에서 소비에트 러시아의 정책 변화에 따른 이르쿠츠크파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는 이르쿠츠크파를 자유시사변의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으며,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고려혁명군이 지녔던 역사적 의미를 희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Ji Su Kim (Sat,)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