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의 목적은 이세신앙을 지향한 신궁봉재회가 근대 한국에 진출하던 과정과 그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 양상을 살펴보는 데에 있다. 이 주제에 대한 관점은 종교단체도 맥락에 따라 경제적 · 정치적 · 사회적 특성으로 인식된다는 맥락적 인식론의 관점이다. 주요 내용은 신궁봉재회의 역사와 성격 및 한국 진출 과정, 신궁봉경회 등 한국인의 반응이다. 우선, 신궁봉재회는 1872년 10월경 이세신궁의 신궁교회를 시작으로, 1882년 신궁교를 거쳐, 1889년에 재단법인으로 전환된다. 신궁 봉재회는 숭경성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종교성(‘이세신앙’)을 유지해 교파신도와 신사신도의 경계를 넘나든다. 다음으로, 신궁교는 1894년에 종군포교 방식으로, 신궁봉재회는 통감부 설치 이후 한반도에 진출한다. 신궁교와 신궁봉재회는 신사신도의 정점인 이세 신궁의 외곽 조직으로, 한반도에서 이세신앙을 공유하던 교파신도 단체들과 협조 양상을 보인다. 다음으로, 한국인의 반응을 보면, 신궁봉재회(‘이세신앙’)와 관련해서는 신궁 봉경회(1906, 재건 1909), 신궁경의회(1909), 천조교(1910, 이후 神習教) 등이 출현한다. 이 단체들은 ‘일본 측 종교’로 인식되지만 경제적 · 정치적 차원의 성장에 주력한다.
Byoungchul Ko (Fri,) studied this ques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