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신궁의 설치 이후 변화된 신라 국가제사 체계를 살피고, 구체적인 제사의 구성까지 추정해보았다. 『三國史記』 제사지에서 神宮 제사는 宗廟之制로 분류된다. 그러나 신궁 제사의 설치 시점과 주신에 대한 정보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신궁 제사의 성격에 관해서는 연구자들 간 견해가 분분하다. 이에 본고는 시조묘 제사와 신궁 제사의 상관관계에 집중해 봄으로써 신궁 제사의 성격을 파악하고, 더 나아가 신궁 설치 이후의 변화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ⅱ장에서는 신궁이 설치되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검토하였다. 신궁 제사는 소지마립간 9년(487) 시조가 처음 태어나고 탄강한 奈乙에 설치되었다. 여기에서의 나을은 혁거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장소인 蘿井을 지칭한다고 여겨진다. 소지마립간 9년은 여러 국가체제의 기틀이 마련되던 시기였으며, 나정은 천신으로서의 혁거세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즉, 새로운 국가체제 마련이 필요하였던 김씨 왕실은 고구려를 통하여 중국의 교사 의례를 이해하고, 혁거세의 천신적 속성을 부각한 제사인 신궁 제사를 고안하였던 것이다. 이어서 ⅲ장에서는 천신 혁거세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 새롭게 신궁이 설치된 이후의 제사 체계에 대하여 고찰해보았다. 신궁 제사가 설치된 이후에도 시조묘 제사는 존속하여, 두 제사는 병존하였다고 파악된다. 이 글에서는 이와 같은 병존 양상이 『三國遺事』 천사옥대조의 ‘郊廟大祀’에 반영되어 있다고 보고, 중고기에 신궁 제사와 시조묘 제사가 각기 천신제사와 조상제사로서 郊廟 제사를 이루었다고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는 신궁 설치 이후의 시조묘 제사에 집중하여, 제사의 구체적인 구성을 추정해보았다. 신라에는 다양한 시조 전승이 전해지며, 상고기에는 각 시조에 대한 제사가 이루어지던 공간인 시조묘 또한 다양하게 분포하였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와중에 김씨 왕실이 왕위를 독점하게 되면서 왕통 계보 정리와 김씨 집단의 계보 정리가 수반되었으리라 짐작된다. 이때 김씨 왕실의 시조 인식은 『國史』에 반영되었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각 집단의 시조였던 혁거세, 알지, 탈해는 왕실의 시조로서 공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왕실 시조로서의 공인은 이들을 모시는 제사의 지위와 위상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본고는 중고기의 郊廟 제사 중 시조묘 제사가 왕실의 세 시조에 대한 제사인 혁거세, 알지 제사, 탈해의 廟 제사로 구성되었을 것이라 추정하였다. 이와 같은 제사의 체계를 통해 중고기의 김씨 왕실은 천신제사와 조상제사라는 두 국가제사를 장악해갔다고 파악된다.
Ui-Myeong Kim (Tue,) studied this ques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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